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웨슬리의 옥스퍼드 생활 단편, 토론

For several years I was Moderator in the disputations which were held six times a week at Lincoln College, in Oxford. I could not avoid acquiring hereby some degree of expertness in arguing; and especially in discerning and pointing out well-covered and plausible fallacies. I have since found abundant reason to praise God for giving me this honest art. By this, when men have hedged me in by what they called demonstrations, I have been many times able to dash them in pieces; in spite of all its covers, to touch the very point where the fallacy lay; and it flew open in a moment.
- in the "The Works of the Rev. John Wesley : in ten volumes (1826)" by John Wesley

웨슬리 시대에, 공개 토론회는 대학 생활에서 중요한 일상이었다. 요한 웨슬리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일주일에 여섯 번 개최되는 토론회의 사회자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끝장토론의 백지영 사회자나, 100분 토론의 손석희 사회자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당시, 사회자로서 웨슬리의 역할은, 토론의 중재와 조정까지도 포함하는 역할이었다. 토론회는, 옥스포드 대학의 중요한 훈련과정이었으니, 대학 교수로서 요한 웨슬리의 역할은 학생들의 훈련을 상당부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요한 웨슬리는, 옥스포드 대학에서의 이 때 생활을 이렇게 회상한다.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사회를 맡아보면서, 토론에 필요한 전문성을 습득할 수 있었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틀린 논점들까지도 알아보고 지적하는 안목을 갖추게 되었다"

요한 웨슬리는, 또한, 대학에서의 이런 경험이,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갖춘 그런 안목과 통찰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여러 상황 속에서도, 틀린 점들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한 순간에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그럴 듯한 포장을 씌워서 감추어 놓았어도, 틀린 점들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와 같은 시기에, 웨슬리가 속했던 "신성 클럽"은, "성경 벌레(Bible Moths)"라고도 불리웠으니, "옥스포드 토론회"는, 웨슬리의 성경 읽기가 이 때부터 얼마나 철저했을지를 짐작하게 해 주는 "또 하나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

#토론 #옥스퍼드 #웨슬리 #일주일에여섯번이면 #dispu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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